1년 간의 워홀, 그리고 4년 간의 학부 유학 생활을 어찌저찌 마무리 하고 든 생각은
"아... 이제 고생 끝인가? 돈 좀 모을 수 있는 건가?" 였다.
하지만 인생은 예측 불가의 맛으로 산다 했던가.
나의 꿈은 첫 월급을 받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.
일본의 취업 시장은 속도가 느린 자에게 자비없는 곳이다.
모든 이들의 취업 타이밍은 대학교 4학년 초반에 정해지며,
그 이전에 행해지는 회사 설명회 및 인턴 참가는 3학년 때 (사실 상) 끝난다.
외자계 대기업은 아예 더 빨리 인턴 참가부터 해야 가망이 있다.
(예를 들어 마소 재팬)
그리고 이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, 그리고 많이 해야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.
물론 학벌은 당연히 본다.
일본 사람들이 한국은 학력사회 아니냐고 까지만
정작 여기는 학력 사회 +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다.
한국은 남성의 경우 군대의 영향도 있고,
1-2년 정도는 이유만 적당하다면 휴학에 있어 큰 문제는 없다.
하지만 일본에선 휴학을 1년이라도 해버리면 당장 동기들과의 세미나가 날라가며,
유학 등의 휴학이 필수적인 이유가 없다면 취업 시장에서 감점 요소다.
(심하면 알바 면접에서까지 '1년이 별 이유없이 비어있네...
음... 좀 그런데...' 한다. 감동 실화.)
심지어 일본의 사립 대학교는 휴학하더라도 돈 내야한다.
고로 좋은 대학을 휴학 없이 빠르게 졸업하는 것이 핵심 중 핵심이다.
구 제국대 급이나 게이오-와세다 급의 대학교를 들어가지 못 했다면,
당연하게도 물량 공세로 취업 시장을 뚫어야 한다.
(위의 명문대 급은 따로 취업 시장이 있어서 아예 다른 물에서 노는 느낌에 가깝다)
그리고 당연히도 취업에 요구되는 시간도 꽤 많다.
인턴 기간이 짧긴 하지만 (일부 기업은 긴 기간인 경우도 있다)
그 만큼 회사도 많아서 여러 번 체험해보고 어필해야 한다.
회사에 따라서는 인턴 = 1차 면접 느낌이므로.
이러한 조건을 반대로 생각해보자면,
중상위권의 지방 국공립대학을 졸업하고,
알바는 투잡으로 매 주 28시간 꽉꽉 채워서 일하고,
그 사이에 틈틈히 공부나 논문 준비하던 나에겐 그야말로 고통이었다.
취업을 위해서는 알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
(실제로 4학년이 되면 취업 전까지는 다들 알바 시간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)
알바 시간 감소 = 생활비 감소 라는 치명타로 이어지기 때문에
나는 적극적인 인턴 참가는 꿈도 꿀 수없었다.
그래도 그런 격하다면 격한 환경에서도 나름의 노력은 했다.
집에 오면 인터넷으로 조건에 맞는 기업들을 하루에 4-50개는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.
그렇다고 그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.
아무래도 나이도 만 29세이고 (일본은 만 25살 넘어서 신입으로 입사하기가 쉽지 않다)
인턴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 했기 때문에 최종 합격까지는 결국 가지 못 했다.
물론 취업 시장에서는 나와 맞는 단 하나의 기업만 찾으면 되기 때문에
크게 개의치는 않았다. 그리고 조금 늦은 타이밍인 8월에
극적으로 내정을 받아 무사히 취업했다.
이렇게나 고생해서 업계에서 나름 무난한 회사에 취업했지만
첫 월급을 받고 나니 일본 취업 시장의 현실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.
"대기업을 가지 않는 이상, 대부분의 회사는 신입 월급이 매우 짜다."
물론 이러한 상황을 아예 모르고 일본에 오기를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,
실수령이 월 17만엔이 찍히는 기적을 목도하고는 난 기절할 뻔 했다.
물론 연 2회 보너스가 있기 때문에 그걸 12개월로 나누면
실수령 20만엔 언저리까지는 찍히긴 하지만,
1년 차가 지나고 2년 차부터는 주민세가 연 단위로 10만엔 이상이 까이기 때문에
도쿄 거주 사회 초년생의 절망은 첫 진급까지 쭉 이어지게 된다.
월세 최소 6만엔 이상, 공과금 2-3만엔만 빠져도 이미 월급의 절반이 까진다.
What the f...
문화 생활 다 포기하고 자린고비 하면서 검소하게 살면 생활이 되기는 하지만,
"이런 상황에서 돈을 모을 수 있는가?" 라고 물어본다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.
"NO."
이대로 (보너스 포함) 월 19만엔 받아가면서 버텨보라고 하면 가능은 하다.
하지만, 이 상황이 최소 3년에서 길게는 6-7년 까지는 이어질 것이며,
소득이 늘어날 수록 주민세도 가파르게 오르기 때문에 까이는 돈은 그 만큼 늘어난다.
애초에 일본의 급여 정책이 "다 같이 덜 잘 살자" 라서 이렇게 되었지 않나 싶다.솔직히 주민세를 사회 초년생에게 월 만 엔씩 뜯어가는 게 맞냐?
아무튼 이 글의 타이틀이 저렇게 된 이유, 일본 생활의 마무리를 결심한 건
이러한 한계점을 몸소 체험한 뒤에 다른 여러 이유로 멘탈까지 붕괴되어서
도저히 일본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원동력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.
월급도 오를려면 30대 초반이 다 지나야하고
(성과가 좋아도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쪼-금 더 오르는 정도이고)
그렇다고 내가 일식을 정말 사랑해서 한국 가서 일식을 상사병 수준으로 그리워 할 것도 아니고
(내 소울푸드인 돼지국밥은 못 먹어서 상사병이 도지다 못 해
오뚜기 돼지국밥이라도 공수하기에 이르렀다)
무엇보다 부모님과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해서 귀국을 결정하게 되었다.
한국에 가기로 70% 정도 마음을 먹었을 때 일본인 여친이 생겼다.
당장은 행복했지만, 내가 한국에 가버리면 장거리 연애가 되어버리기 때문에
일본에서 그냥 살아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.
하지만 건강 관련해서는 동생이 대신 챙겨줄 수 있다고 쳐도,
한식은 신오쿠보에 자주 가거나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조금씩 버텨본다고 쳐도,
내 월급이 (보너스 포함) 월 20만엔 전후에서 머무르는 수준으로는
결혼은 무슨 연애도 빠듯할 것 같았다.
그래서 여친에게 상담을 하니, 다행히도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,
덕분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.
(애초에 여친이 한국 거주 경험이 있음 + 한국어 거의 완벽함 이기도 했고...)
한국에 가서 월급이 극적으로 오른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잘 안다.
특히나 내 고향 부산에서 취업한다면 더더욱 힘들 것이라는 걸 잘 안다.
하지만, 월세와 세금 부담이 줄고, 공과금 부담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이며,
이로 인해 조금씩 돈을 모을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.
3년 더 버티면 영주권 따는데 아깝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.
나도 영주권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.
하지만, 영주권을 따서 얻는 이득은 일본에서의 자유로움과 주택론 정도이고,
요즘은 취업 비자도 길게 나오는 편이라 크게 메리트를 느끼지는 못 했다.
그리고 여친과 결혼하게 된다면 어차피 영주권 보다는 배우자 비자를 선호하게 될 것이므로
더더욱 영주권을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.
한국에 돌아가는 시기는 내년 3월 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.
7년 간의 짐을 모두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지만,
남은 5개월 동안 잘 정리해서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.
fin.